김봉현 탈옥 시도로 본 희대의 탈옥범들...
법정과 병원에서 도주한 정필호와 이낙성(6부)
법정에서 교도관 찌르고 도주한 정필호
2000년에는 정필호의 광주지법 법정 탈주(脫走) 사건이 벌어졌다.
정필호는 다른 수용자(收容者) 노수관, 장현범 등과 함께 광주지방법원
법정(法庭)에서 교도관(矯導官)을 찌르고 달아났다.
이번 사건의 가장 큰 논란(論難)은 어떻게 이들이 법정에 흉기(凶器)를
소지(所持)하고 들어올 수 있었느냐다.
정필호는 교도소(矯導所)에서 다른 수용자(收容者)들의 도움을 받아
감방(監房) 내 방범창(防犯窓) 틀을 길이 25~26cm정도로 잘라낸 뒤
화장실(化粧室) 시멘트 바닥에 갈아 흉기(凶器)를 만들었다.
그 이후 1월 27일 호송(護送) 버스 (Bus)에서 노수관, 장현범 등에게
계획(計劃)을 전달한 정필호는 2월 24일에 탈옥(脫獄)을 시도했다.
이날 날씨가 춥다는 이유(理由)로 옷을 껴입은 뒤 허리춤에 흉기를 감춘
정필호는 수용자들이 대거 검신대를 통과(通過)할 때 자연스레 검신대
옆을 지나가는 방식으로 법원(法院)에 들어왔다.
이후(以後) 법원(法院) 대기실(待機室) 화장실(化粧室)에서 노수관과
장현범에게 흉기(凶器)를 건넸다.
광주지법 법정을 탈출(脫出)한 이들은 카렌스 차량을 빼앗아 도주한 뒤,
이 차를 버리고 전북(全北)의 순창에서 또 다시 엘란트라 승용차를 훔쳐
전주로 이동(移動)했다.
그리고 화물(貨物) 트럭의 뒤칸에 몰래 탑승(搭乘)해서 서울로 왔지만,
다음날 오전 7시 35분 무렵에 서울시 중구 평화시장 부근에서 노수관이
경찰(警察)에 검거(檢擧)됐다.
이날 오전 11시 50분 무렵 경기도 안산시 월피동 주택가(住宅街)에서
장현범도 체포(逮捕)됐다.
정필호는 탈주 13일 만인 3월 7일에 검거(檢擧)됐다.
정필호가 애인(愛人)에게 전화(電話)를 걸었고 그때 발신지 (發信地)
추적(追跡)을 통해서 그가 애인 집 인근(隣近)에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경찰(警察)은 바로 인력(人力)을 대거 그 지역(地域)에 투입했다.
낌새가 이상하다고 여긴 정필호는 라노스 승용차를 탈취해 도주했지만
경찰이 쏜 총이 바퀴에 명중(命中)하면서 차량(車輛)이 멈춰 섰다.
다시 정필호는 택시에 올라타서는 택시 기사를 흉기로 위협(威脅)하며
도주극(逃走劇)을 이어가려 했지만 출근 시간대 교통정체(交通停滯)로
멈춰섰고 경찰이 격투(格鬪)를 벌인 끝에 정필호를 검거했다.
병원에서 도주해 병원에서 잡힌 이낙성
2005년 4월 7일 새벽 1시쯤 안동의 한 병원에 치핵수술(痔核手術)을
받기 위해 입원한 이낙성은 자신을 감시하던 교도관이 졸고 있는 상황에서
환자복 위에 교도관 점퍼를 걸쳐 입고 도주했다.
이낙성은 2001년 말 강도상해(强盜傷害) 혐의(嫌疑)로 체포(逮捕)돼
징역(懲役) 3년에 보호감호(保護監護) 7년을 선고(宣告)받고 2004년
1월 말부터 청송감호소에서 수감(收監) 중이었다.
새벽 4시쯤 서울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 앞에서 교도소(矯導所) 동기를
만나서 도피자금을 전달받고 옷을 갈아입은 이낙성은 오전 5시 30분쯤
서울 지하철 2호선 사당역 근처(近處)를 마지막으로 1년 6개월 가량
완벽하게 경찰(警察) 감시망(監視網)에서 사라졌다.
경찰이 1,000만 원의 보상금을 내걸고 전국(全國) 9개 지방경찰청에
30개 팀 116명의 전담반(全擔班)을 구성했지만 전혀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대단한 도주(逃走) 기술(技術)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이낙성은 북창동 인력시장을 통해서 일자리를 구해 구리와 마포 등지의
중국음식점에서 설거지 등의 일을 하며 지냈다.
검거(檢擧)된 것은 2006년 10월 31일이다.
이날 오후 이낙성은 치과(齒科) 치료(治療)를 받기 위해 서울 성수동의
한 치과병원(齒科病院)을 찾았다.
2층에서 떨어져서 다쳤다는 이낙성은 윗니 3∼4개가 완전하게 빠지고,
아랫입술이 심하게 찢어져 수술이 필요했다.
수술을 받으려면 병원에 자신의 신상정보(身上情報)를 알려야 하는데
이낙성은 무협소설의 주인공 이름을 대고 머리를 다쳐서 주민등록번호가
기억(記憶)이 안 난다며 버텼다.
그럼에도 병원(病院) 측이 거듭 신상정보를 요구 (要求)하자 이낙성은
“내가 이낙성이다. 감옥에서 나왔다. 경찰이 올 거다”라고 말했다.
이에 병원 관계자가 경찰에 신고했는 데 그제야 마음을 바꾸고 도주한
이낙성은 인근 은행지점(銀行支店) 앞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이낙성이 탈주 중이던 2005년 8월에 보호감호처분 제도는 폐지됐다.
만약 이낙성이 병원에서 도주하지 않았다면 4개월 뒤 풀려났을 것이다.
그렇지만 1년 6개월이나 탈주극을 벌이며 숨어 지냈던 이낙성은 결국
검거돼 다시 실형을 살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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