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코리아(Korea)란 명칭은
언제 어떻게 유래 되었을까?
중국 문헌으로 우리나라의 인삼이 나오는 기록으로는 도홍경(陶弘景)의
‘신농본초경집주(神農本草經集注)’와 ‘명의별록(名醫別錄)’이 있다.
양(梁, 502~557)나라 역사서(歷史書)인 '양서((梁書) 본기(本紀)에서도
무제시대(武帝時代)에 백제(百濟)의 인삼(人蔘),
수(隋, 581~619)나라 관정(灌頂)이 편찬한 ‘국청백록(國淸百錄)’ 혹은
‘국정백록(國定百錄)’, 660년경 장초금(張楚金, 출생미상~689)이 저술한
‘한원(翰苑)’의 고려기(高麗記),
송나라 서긍(徐兢, 1091~1153)이 1123년 그렸다는 ‘선화봉사고려도경
(宣和奉使高麗圖經)’에 인삼(人蔘)에 관한 많은 기록(記錄)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는 성덕왕, 소성왕, 경문왕 때에는 당(唐)나라에
사신(使臣)을 파견하면서 인삼(人蔘)을 진공(珍貢)한 기록이 있다.
799(소성왕 1)년 7월 기록엔 “길이가 9척이나 되는 거대한 인삼(人蔘)을
발견(發見)해 너무 신기해서 당나라에 진상(進上)을 했더니 덕종(德宗)이
인삼(人蔘)이 아니라고 반납(返納)했다.
” 당(唐)나라 숙종(肅宗) 때에도 이순(李珣, 855~930)이 지은 ‘해약본초
(海藥本草)에 고려인삼(高麗人蔘)이 나온다.
코리아(Korea)란
고려인삼(Korea Ginseng)에서
KBS 방송국 대하 드라마 ‘태조왕건’ 193회 왕건(王建)이 견훤(甄萱)의
아버지 아자개(阿玆蓋)에게 박술희(朴述熙)를 통해 서찰을 보냈다.
마침 그 어른은 와병중에 있었고 아들 견훤이 500년 묵은 산삼을 보냈다.
그런데 왕건은 박술희를 통해서 천년 묵은 산삼(山蔘)을 보냈다.
그 천종산삼(天種山蔘)을 삶아 먹고 기운(氣運)을 회복(回復) 하자말자
아자개(阿玆蓋)는 왕건을 찾아갔고 알현했다. 당시 동양(東洋)에서 특히
산삼(山蔘)은 신(神)이 내리는 영험(靈驗)한 약초(仙藥)였다.
6·25전쟁(戰爭) 후에도 어른들로부터 “산삼(山蔘)은 산신령(山神靈)님이
효성(孝誠)이나 치성이 지극해야 점지해 준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당시 어린아이들은 “누구는 산삼(山蔘) 먹고, 너는 인삼(人蔘) 먹으며,
나는 무(채소) 먹었다.”라는 말을 했다.
어른들도 빠닥빠닥하게 힘깨나 쓰는 사람을 보고 “산삼(山蔘) 먹은 놈의
물건 같다.”고 표현했다.
인삼(人蔘= ginseng)을 영어(英語)로는 ‘진셍(ginseng)’이라고 하는데
어원을 살펴보면, 중국 복건성(福建省), 대만, 홍콩, 마카오 등에서 사용한
민남어(Hokkien Chinese)의 ‘진심(人蔘, jin-sim)’이란 말에서 기원했다.
중국어(中國語)의 표준어(標準語= 普通話)로는 "런센(人蔘)",
런(人= person)과 선(蔘= plant root)으로 발음을 했는데 이런 표기는
식물뿌리가 사람 모양을 닮았다는데서 유래(由來)되었다.
식물분류학(植物分類學) 종명(botanical genus name)은 라틴어로는
‘파나세아(panacea)’로 의미(意味)는 ‘만병통치(all-healing)’다.
이렇게 표기를 한 린네우스(Carl Linnaeus)는 중국의학(中國醫學)에서
‘근육이완(筋肉弛緩) 등’에 통용되는 약(藥)이라는 점을 의식했다.
AD 196년 중국(中國) 최초(最初) 약물학술서인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
Shen Nong Pharmacopoeia)’에 약초로 인삼이 최초 기록돼 있었다.
1596년 이시진(李時進)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 우수(優秀)한 강장제
(有病治病= superior tonic)”로 표현했다.
우리나라의 인삼(人蔘) 전매(專賣) 사업은 1606년 (선조39)년 부터인데
호조삼상(戶曹蔘商)에서 허가(許可)된 상인 전인(廛人)으로 인삼 무역에
종사(從事)하게 했다.
1686(숙종12)년 금삼사목(禁蔘事目)이란 규정(規定)을 정해서 엄격하게
밀무역(密貿易)을 규제(規制)했다.
1797(정조21)년 인삼절목(人蔘節目)을 반포해 인삼경작(人蔘耕作) 등에
일반규칙(一般規則)을 제정(制定)했다.
1810년에는 개성(開城)에다 홍삼(紅蔘) 생산(生産)과 수출(輸出)을 위한
증포소(蒸包所)를 설치했다.
1876(고종13)년 개항 이후에 1894년 개혁 조치로 포삼규칙(包蔘規則)을
국법(國法)으로 제정했으며, 그 업무는 탁지부(度支部)에서 관장했다.
종삼회사(種蔘會社)까지 설립(設立)해 전매(專賣) 관리(管理)를 했다가
갑오(甲午) 내각(內閣)으로 인해 붕괴(崩壞)되었다.
1898년 이용익(李容翊)의 인삼정책으로 왕실재정확충(王室財政擴充)에
새로운 전기(轉機)를 마련했다.
1899년 8월에 농상공부(農商工部)에 삼정사(蔘政社)를 설립 운영했다.
1910년 10월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는 전매국(專賣局)을 설치(設置)해
담배, 소금, 인삼(人蔘), 아편(阿片), 마약류(痲藥류)를 전매사업으로
하면서 재정(財政) 원천(源泉)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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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신문 ; 김종현 기자
글=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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