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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탈옥 시도로 본 희대의 탈옥범들... 16kg 감량까지 감수한 신창원(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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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탈옥 시도로 본 희대의 탈옥범들...

16kg 감량까지 감수한 신창원(4부)

 

1997년 희대(稀代)의 탈옥(脫獄) 사건(事件)이 벌어졌다.

신창원은 1989년 3월 공범 3명과 성북구 돈암동 소재의 주택(住宅)에

침입(侵入)해서 강도(强盜) 행위를 했는데, 공범 중에 한 명이 집주인을

살해(殺害)해 강도치사죄(强盜致死罪)로 수배(手配)된다.

 

신창원은 그해 9월 청량리에서 검거(檢擧)돼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청송교도소에 수감된 신창원은 1994년 부산교도소로 이감(移監)됐고

1997년 1월 수용실 화장실의 작은 환풍구 철망을 뜯고 탈옥했다.

 

작업장(作業場)에서 훔친 실톱을 신발 밑창에 숨겨 빼돌린 후에 하루에

20분씩 두 달 동안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작업(作業)했다.

 

가로 32cm, 세로 28cm의 작은 환풍구(換風口)로 빠져나가기 위해서

신창원은 아프다는 이유(理由)로 약 두 달 동안이나 거의 밥을 굶어 무려

16kg을 감량(減量)했다.

 

그렇게 환풍구(換風口)로 빠져나온 뒤 교도소(矯導所) 내 교회(敎會)

공사장(工事場)으로 가서 환풍구에서 잘라낸 쇠창살로 공사장의 가림막

아래 땅을 파고 교도소를 빠져나왔다.

 

이후 인근(隣近) 농장(農場)으로 가 새 옷과 신발 등을 훔쳐 도주했다.

신창원은 전국(全國)으로 지명수배(指名手配)가 됐지만 좀처럼 잡히지

않으면서 ‘희대(稀代)의 탈주범(脫走犯)’이 됐다.

 

그러던 중 1997년 12월 경찰(警察)은 경기도 평택의 한 빌라에 있던

신창원을 찾아냈지만 대치(對峙)가 이어지는 긴박한 과정에서 신창원이

창밖 배수관(配水管)을 타고 달아났다.

 

그러다가 1998년 7월에도 신창원의 은신처(隱身處)로 추정(推定)되는

20대 애인(愛人)의 집을 경찰이 덮쳤지만 이미 사라진 뒤였다.

 

결국 검거(檢擧)된 것은 1999년 7월 전남 순천의 한 아파트에서였다.

그 집을 방문했던 가스레인지 수리공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한 것이다.

 

순천경찰서는 경찰관(警察官)과 전경(戰警) 등 50여 명을 현장에

투입하여 검거 작업에 들어갔다. 은신처(隱身處)를 덮치고도 신창원을

놓친 경험이 있는 경찰은 우선 해당 아파트를 완벽하게 포위했다.

 

무장 경찰이 베란다의 창문으로 몰래 들어가서 신창원을 덮치는 동시에

현관문(玄關門)을 열어 경찰을 추가(追加) 투입하면서 결국 검거했다.

 

탈주극을 벌인 기간(期間)만 3년 6개월. 신창원의 당시 탈주극은 이후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일요신문 신민섭 기자님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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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신문 ;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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