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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탈옥 시도로 본 희대의 탈옥범들... 교도소 문제점 드러낸 박봉선 일당 사건(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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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현 탈옥 시도로 본 희대의 탈옥범들...

교도소 문제점 드러낸 박봉선 일당 사건(3부)

 

 

교도소 문제점 드러낸 박봉선 탈옥사건

1983년 처남 댁(宅)을 살해(殺害)한 뒤 시체(屍體)를 유기(遺棄)한

혐의(嫌疑)로 무기징역(無期懲役)을 선고받은 무기수 박봉선과

 

1989년 5월 가정집에 침입(侵入)해 집주인을 살해(殺害)한 혐의로

징역(懲役) 15년을 선고(宣告)받은 신광재, 그리고

 

1990년 5월 술집에서 폭력(暴力)을 행사해 징역 장기(長期) 10월,

단기(短期) 8월을 선고(宣告)받은 김 아무개 군. 그렇게 이들 세 명은

1990년 12월 27일 새벽 4시 30분 전주교도소에서 탈옥했다.

 

이들은 교도소(矯導所) 내 작업장(作業場)에서 몰래 반입(搬入)한

쇠톱으로 수형실(受刑室) 화장실(化粧室) 창문(窓門) 쇠창살 2개를

자르고 교도소 선반을 잘라 만든 사다리로 수형동을 빠져나갔다.

 

교도소(矯導所)의 외벽(外壁)까지 몰래 이동(移動)해서는 사다리로

철조망(鐵條網)까지 처진 4.5m의 외벽을 넘어 탈옥(脫獄)했다.

 

그렇지만 교도소에서는 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고, 오전 7시 20분

아침점호 시간이 돼서야 탈옥(脫獄) 사실(事實)을 파악했다.

 

이미 이들이 탈옥(脫獄)하고 3시간 가까이 지난 뒤였다.

게다가 박봉선이 교도관 도움으로 외부에서 몰래 반입해서 수형실에

보관하던 사복이 있어 이들은 바로 사복으로 갈아입고 도주했다.

 

이후 택시를 탈취(奪取)해 도주(逃走)하다 경찰(警察) 검문(檢問)에

걸리자 흉기를 휘둘러 경찰관에 중상을 입하고 권총까지 빼앗았다.

 

택시 대신 승용차를 탈취해 도주했고, 다시 경찰 검문(檢問)이 보이면

그 차량을 버리고 다른 차량을 탈취하는 방식으로 도주를 이어갔다.

 

결국 대청댐 인근에서 경찰(警察) 검문소(檢問所)가 보이자 차량을

버리고 야산으로 도주해 대청댐에 이르렀지만 더 이상은 경찰포위망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김아무개 군을 자수(自首)하게 한 뒤 박봉선은 권총(拳銃)으로

자살(自殺)했고, 신광재 역시 자살했다.

 

박봉선 등 세(3) 명의 탈옥 사건은 교정 당국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탈옥(脫獄)이 이뤄지고 세 시간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파악한 데 이어

작업장에서 쇠톱을 수형실(受刑室)로 반입하는 것도 막지 못했다.

 

게다가 사복(私服을 수형실에 보관하게 도와준 교도관까지 있었다.

경계(警戒)가 허술하다는 지적을 넘어서 교도소에 만연(蔓延)해 있던

문제점들이 드러난 것이다.

 

박봉선은 다른 수형자(受刑者)의 금품을 빼앗는 등 횡포를 저질렀고

교도소에서 몰래 담배를 팔기도 했다고 알려졌다. 그럼에도 박봉선은

교도소에서 모범수(模範囚)로 분류돼 있었다.

 

결국 이 사건으로 교도관 3명이 구속됐는데, 이 중에서 사복을 전달한

교도관(矯導官)은 전주교도소 독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또한 전주교도소장은 해임(解任)됐고 교도관 10명이 파면(罷免)이나

해임을 당하는 등 모두 34명이 징계(懲戒)를 당했다.

 

 

 

일요신문 신민섭 기자님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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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신문 ;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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